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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 빵 – 몸과 마음의 양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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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 – 몸과 마음의 양식


본 내용은 대한성공회출판부에서 1998년 5월 발행한 책 <우리 믿음 바로 알기(김진만 저)>입니다. 게시를 허락해준 대한성공회출판부에 감사드립니다.

우리는 빵만으로는 살 수 없다. 예수님이 굶주림 때문에 유혹을 받으셨을 때 인용하신 구약의 말씀이다: “‘이는 사람이 빵만으로는 살지 못하고 야훼의 입에서 떨어지는 말씀을 따라야 산다는 것을 너희에게 가르쳐 주려는 것이었다”(신명기 8:3).


예수께서는 주의 기도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양식을 주십사고 기도하라고 하셨다. 여기서 양식이라는 말은 원어에서, 그리고 거의 모든 번역에서 ‘빵’으로 되어 있는 말이다. 구약에 근 3백회, 신약에 근 백회나 나오는 빵이라는 말은 빵을 가리킬 때가 대부분이지만 주의 기도에서와 같이 일반적으로 음식, 양식을 가리키기도 한다. 우리는 빵만으로는 살 수 없지만 빵 없이도 살 수 없다. 빵은 포도주나 물과 함께 유대인의 양식의 기본을 이루었다. 그래서 빵을 우리말로 떡이라고 해서는 안된다. 우리는 떡을 먹고 살지는 않기 때문이다.

에덴에서 쫓겨난 아담에게 하느님은 이렇게 명령하신다: “흙에서 난 몸이니/흙으로 돌아 가기까지/ 이마에 땀을 흘려야 낟알을 얻어 먹으리라”(창세 3:19). 앞으로는 놀고 먹을 수는 없다는 말씀이었다. 단식을 할 때는 빵을 먹지 않는다. 슬픔에 잠겼을 때도 마찬가지이다.

유대인들의 예배에서 빵은 중요한 구실을 했다. 사제들의 축성 때는 빵을 예물로 바치고, 축성된 사제가 그 빵을 먹었다: “고운 밀가루로 누룩 안 든 빵과… 누룩 없이 기름만 발라 만든 속 빈 과자를 만들어라”(출애굽기 29:2). 그 옛날의 누룩이 안든 빵은 오늘날에도 성찬식에 쓰는 빵의 원형이다. 예외는 있었지만, 누룩은 일종의 부패물로 보아서 제단에는 누룩 없는 빵만을 바쳤다.

신약에 들어와서도 사람은 자기가 먹을 빵을 얻기 위해서 일할 의무가 있다는 통념이 있었다:(우리는) “아무에게서도 빵을 거저 얻어 먹지 않았습니다”(II 데살로니카 3:8). 빵은 수천 명을 먹이신 기적에도 등장한다. 그러나 요한복음 6장에는 대단히 놀라운 말씀이 나온다: “예수께서는 ‘정말 잘 들어 두어라. 너희가 지금 나를 찾아 온 것은 내 기적의 뜻을 깨달았기 때문이 아니라 빵을 배불리 먹었기 때문이다. 썩어 없어질 양식을 얻으려고 힘쓰지 말고 영원히 살게 하며 없어지지 않을 양식을 얻도록 힘써라. 이 양식은 사람의 아들이 너희에게 주려는 것이다. …정말 잘 들어 두어라. 하늘에서 너희에게 진정한 빵을 내려 주시는 분은 내 아버지이시다. 하느님께서 주신 빵은 하늘에서 내려 오는 것이며 세상에 생명을 준다’”(요한 6:26-33). 여기서 ‘생명의 빵’이라는 말이 나왔다.

요한의 이야기의 배경에는 막 행하신 기적과 구약의 만나와 그리스도교의 성찬식이 깔려 있다. 그리스도가 세우신 성찬식은 사제가 교인들이 바친 예물인 빵과 포도주를 제단에 놓고, 빵을 떼고, 예수님께서 그 예식을 세우셨을 때 하신 말씀을 외우고, 교인들과 함께 그 빵과 포도주를 받아 먹고 마시는 것이다. 성찬식에서 빵 한 개를 떼서 많은 신도들이 나누어 먹을 때 모두가 한빵, 한 몸이 된다. 빵은 교회를 한데 묶어 주고 교회의 일치를 상징하는 것이다.
 
빵은 일용할 필수품이면서 예수님과 한 몸이 되게 하는 생명의 양식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