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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28일(월) / 성 마르코 복음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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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28일(월)

    

성 마르코(복음사가)

    

마르코 복음서는 예수님의 말씀과 활동에 관해 처음으로 씌여진 복음서로 마태오, 요한, 루가 등 다른 복음서를 연구하는 중요한 토대를 이룰 뿐 아니라 감추어진 「메시아 비밀」을 예수님의 행적과 십자가 죽음, 부활 안에서 생생히 증언하고 있는 기록이다.

    

성 마르코(Marcus)가 사도행전 12,12-25에서 “마르코라고도 불리는 요한”과 동일 인물이라고 여겨지며, 사도행전 12:12 에 “그는 어머니 마리아와 함께 예루살렘에 살았으며 그 집에 그리스도 교인들이 모이곤 하였다”고 증언하는 인물일 것이다. 집주인 마리아가 그의 어머니인 듯하며, 그 집은 예수님이 제자들과 마지막 만찬을 나눈 집이기도 하다.

    

이외에도 베드로의 첫 번째 서신에서 “내가 아들로 여기는 마르코(1베드로 5,13)”, 바우로가 골로새에 있는 성도들에게 쓴 서신에서 “바르나바의 사촌 마르코”(골로 4,10), 빌레몬에 있는 교우들에게 쓴 서신에서 “나의 동료 마르코(빌레 l,2)”, 디모데에게 쓴 두 번째 서신에서 “마르코를 데리고 오십시오(2 딤후 4,11)” 사도행전에 나오는 요한 마르코(13,5; 12,12.25; 15,37), 복음사가 마르코는 모두 같은 인물로 보고 있다. 예수께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체포되실 때 몸에 고운 삼베만을 두른 젊은이가 예수를 따라가다가 붙들리게 되자, 삼베를 버리고 알몸으로 달아났던 인물도 마르코로 여겨지나(마르 14,51-52) 확실하지는 않다.

    

마르코는 바우로와 바르나바를 따라(사도 12,25) 1차 선교여행을 떠났다(사도 13,5). 그들은 예루살렘에서 안티오키아로 갔다가 그 후 키프로스 섬까지 함께 갔으나 그 다음 목적지인 소아시아의 주요 지역인 밤빌리아의 버가 여행을 포기하고 예루살렘으로 돌아가 버렸다(사도 13,12). 이에 바우로가 그를 못마땅히 여긴 나머지 2차 선교여행 때는 동행하기를 거절하였다. 이에 바르나바는 바우로와 격렬한 언쟁을 하게 되고 마르코와 함께 키프로스 섬으로 갔다(사도 15,37-40). 그러나 53-58년 경 3차 전도여행 때 바우로가 에페소에서 감옥에 갇혀 있을 때 마르코가 바우로 곁에 있었고 (골로4,10) 바우로가 순교한 다음 그 제자들 가운데 한 사람이 쓴 디모데오서 4장 11절에서는 바우로가 디모테오에게 마르코를 데려오도록 부탁한 적이 있는 것으로 보아 그들의 불화는 그리 오래 가지는 않은 것 같다. 

    

또한 베드로 전서 5:13에 “내가 아들로 여기는 마르코”라고 언급되어 있는 것처럼 마르코와 베드로는 아주 가까운 사이였음을 알 수 있다. 소아시아의 히에라폴리스의 주교 파피아스에 의하면, 마르코 복음서는 베드로의 통역자 마르코가, 베드로가 예수님의 말씀과 행적에 관해서 가르친 것을 기초로 순서대로는 아니지만 기억나는 대로 기록한 것이 라고 한다.

    

마르코는 베드로와 바우로가 죽은 뒤 로마를 떠나 이집트 알렉산드리아로 가서 베드로 정신에 따라 교회를 세웠다. 그러다가 그리스도교에 대한 박해가 일어나면서 체포된 것으로 알려진다. 이후 마르코는 목에 줄을 매 읍내를 돌게 되고 참살 당하게 된다. 정확한 순교 날짜나 장소는 알려져 있지 않지만 마르코의 유해는 9세기경 이탈리아의 베네치아에 옮겨져, 유명한 성 마르코 대 성당에 지금까지 보존되어 있다. 

    

마르코 이전에 예수님의 가르침과 복음은 구전형식으로 돌아다녔고, 바울로의 서신들은 예수님의 실재 삶을 증언하기에는 미약하였다. 그러나 마르코에게 예수님 메시지의 권위는 고난받고, 십자가에 달린 메시아라는 역설 가운데 근거하고 있다. 이 메시지는 주님의 전체사역과 수난의 빛 가운데서만 오직 이해될 수 있다. 마르코복음의 전반부에서 주님의 권위는 병자를 치유하고, 죄를 용서하며, 마귀를 축출하고, 폭풍을 잠잠케 하고, 죽은 자를 일으키시는 이적 등을 통하여 드러난다. 마르코복음의 진수는 8장에서 주님을 향하여 ‘주님은 그리스도이십니다.’라고 고백하고, 뒤이어 이어지는 주님의 수난예고에서부터 시작된다.

    

마르코복음은 표면상으로 예수님의 지상 삶에 관한 이야기이지만 점차 제자들을 위한 핸드북으로서의 모습을 드러낸다.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단지 입으로 ‘주님은 그리스도이시다.’고 고백하는 것이 아니라 ‘십자가를 지는 자기희생과 사랑의 모범이신 그리스도’를 본다는 것이다. 세상은 죄의 권세가 지배하고 있지만 마르코복음은 제자로 살아간다는 것이 무엇을 따라는 삶이어야 하는지를 분명히 보여주고 있다.

    

마르코는 미래를 향하여 열린 결론으로 복음서를 마치고 있다. 마르코에 의하면 세 여인이 돌아가신 주님의 빈 무덤에서 흰 옷을 입은 한 젊은이를 목격하고, 그로부터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듣는다.

    

“겁내지 마라. 너희는 십자가에 달리셨던 나자렛 사람 예수를 찾고 있지만 예수는 다시 살아나셨고 여기에는 계시지 않다. 보아라. 여기가 예수의 시체를 모셨던 곳이다. 자, 가서 제자들과 베드로에게 예수께서는 전에 말씀하신 대로 그들보다 먼저 갈릴래아로 가실 것이니 거기서 그분을 만나게 될 것이라고 전하여라.”

    

마르코는 부활하신 주님은 더 이상 과거의 땅에 묻히신 분이 아니라, 제자들보다 갈릴리로 갈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마르코복음을 읽는 독자들은 ‘예수님 이야기의 결론’을 제자로서의 십자가를 짊어지는 삶으로 써야만 한다. 마르코의 부활이야기는 믿는 이들의 삶을 통하여 완성되어야 하는 이야기이다. 

    

마르코 복음서가 전하는 메시지의 핵심은 1장 1절의 말씀에 잘 나타나고 있는데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신 예수님이 바로 하느님의 아들이시며, 그리스도이시다”라는 것이다.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 안에서 밝혀지는 메시아 비밀, 수난 예고에 이어지는 제자들이 걸어가야 할 길, 복음서 전체에 면면히 흐르는 예수님의 수난은 예수님께서 누구인지, 오늘을 사는 그리스도인의 모습은 어떠해야 되는지 되새기게 만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