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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 성공회가 기억하는 교황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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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회가 기억하는 교황들

본 내용은 대한성공회출판부에서 1998년 5월 발행한 책 <우리 믿음 바로 알기(김진만 저)>입니다. 게시를 허락해준 대한성공회출판부에 감사드립니다.

교황(아버지라는 뜻의 포우프)은 로마의 주교이며, 가톨릭교회의 최고의 수장이다. 9세기 이래 로마의 주교만이 교황으로 불리게 되었다. 영국 성공회, 따라서 세계 성공회의 역사와 관련된 교황, 성공회가 좋은 일, 궂은 일로 기억하는 교황이 몇 분 있다.  우선 영국에 선교단을 보내서 영국인들을 교화한 그레고리 1세가 있다. 교회  지도자로서, 그리고 정치가로서의 업적이 많다. 주교들의 복무 지침서라고 할 수 있는 그의 [목회서]는 중세 교회의 고전으로 널리 읽혀지고, 고대 영국의 알프레드 대왕 때 영어로 번역되었다.

 
피우스 V(1504-1572)는 종교 개혁의 어려운 시기에 로마 교회를 이끈 사람이었다. 개신교 개혁에 반대해서 소집된 반종교 개혁 공의회(트렌트 공의회)의 결의를 충실하게 집행하려 했고, 유럽 전역에서 가톨릭세력 강화를 위해서 헌신했다. 그는 개인적으로는 엄격하고, 열광적인 인물이었다. 알바 공작의 군대의 도움으로 화란으로부터 개신교국인 영국 내에 반란을 일으키자는 건의를 받은 피우스는 1570년에 엘리자베스 여왕을 파문하는 칙서를 발표했다. 그 때 영국에서의 반란은 이미 진압되었으나, 그 사실을 모르고 그 엄청나고 불행한 문서를 반포하였던 것이다. “영국의 귀족들과 백성들은 여왕에 대한 모든 복종 서약에서 해방되며, 여왕의 권고나 명령이나 법률로부터 자유롭다.” 이것은 사실상 여왕을 살해해도 죄가 안된다는 말이었고, 한 저자는 “종교 개혁 이래 오늘날까지 교황이 영국에 대해서 저지른 최악의 과오”라고 단정한다. 이 칙서로 영국의 모든 가톨릭교인이 졸지에 잠재적 반역자가 되었다.
 
그 다음 우리가 기억하는 교황은 레오 XIII(1810-1903)이다. 레오는 교회의 개혁에 열의를 보인 현대 교황으로 교황이 되기 전부터 교회를 재건하고, 학문을 권장하고, 사회 개혁 운동을 폈다. 그는 사회 문제에 남다른 관심을 가지고 노동계급이 종교를 버리게 될 것을 우려해서 1891년에 새 시대의 사회에 대한 그의 성찰과 여러 사회 문제의 해결책을 담은 ‘레룸 노바룸’이라는 역사적 칙서를 발표했다. 가톨릭교회의 사회에 대한 종합적이고 체계적인 태도 표명이었다. 이 칙서는 현재에도 많이 읽혀지고 언급되는 한 고전적인 발언으로 인정되고 있다. 그러나 레오는 영국 교회의 성직의 무효를 선언한 사람으로서도 기억된다.
 
마지막으로 우리가 큰 존경심을 가지고 기억하는 교황은 요한 XXIII(1881-1963)이다. 연로하고 허약한 요한은 기껏해야 임시적인 교황으로 생각되었으나, 가톨릭교회의 역사에 일대 전환을 가져온 제 2차 바티칸 공의회를 소집했다. 요한은 원래 보수적인 사람이었으나, 그가 이룩한 업적은 로마 교회를 안팎으로 활짝 열어서 실속 있는 에큐메니즘을 세상에 선사했다. 그의 용기에 감동한 캔터베리의 핏셔 대주교가 교황을 찾아가는 전대 미문의 사건이 일어났다. 갈라진 형제들 중 성공회와 가톨릭교회는 ‘특별한 관계’에 있다고 했다. 그 후 그 두 사람의 후계자들은 상호 방문하고, 신학자들을 임명해서 국제 신학 위원회로 모이게 되었다. 일치의 길은 요원하지만 레오 때의 로마와 요한 이후의 로마는 아주 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