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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 성인 – 성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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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 성녀

본 내용은 대한성공회출판부에서 1998년 5월 발행한 책 <우리 믿음 바로 알기(김진만 저)>입니다. 게시를 허락해준 대한성공회출판부에 감사드립니다.

성공회는 16세기의 개혁 이전까지는 로마 교회의 일부였으므로 로마 교회가 정한 성인, 성녀를 기념했다. 그러나 개혁 이후에는 스스로 성인을 정하지 않을 뿐 아니라 성인 숭배를 기피하다가 19세기 중엽의 옥스포드 운동을 계기로 다시 성인을 공경하는 축일, 축제 등의 풍습이 되살아났다. 

종교 개혁 이전의 영국 교회는 성모 마리아와 베드로, 바울로 성인을 위시한 성인들을 교회에서 기억하고 기념하는 한편 영국 스스로가 많은 성인을 배출했다.

영국에 정착한 앵글로-색슨의 교화에 공을 세운 성 에이던(애단, 651 별세), 영국 교회사를 후세에 남긴 석학 수사 성 베다(673-735), 위트비의 수녀 원장으로 고대 영국 교회의 일치에 절대적인 공헌을 한 성 힐다(614-80)가 그렇고, 국왕 헨리 II와 맞서다가 자기 대성당 안에서 학살당해서 순교한 토마스 베케트 캔터베리 대주교(1118-70)도 있다. 영국에서는 다른 나라에서와 같이 성인 숭배가 성했다.

오늘날 성인으로 교회의 인정을 받으려면 복잡한 검증 절차와 오랜 세월이 걸린다. 로마 교회의 규정이 대단히 엄격하고 동방 교회는 훨씬 느슨하다. 위에서 본 영국 성인들도 토마스 대주교만이 교황의 승인을 받았고, 그 이전의 성인들은 시성 절차나 교황의 승인없이 영국에서 지역적으로 기념했을 뿐이다. 로마 교회는 특히 20세기에 들어와서 소위 ‘현대화’의 일환으로 근거가 박약하거나 전설에 근거한 무수한 성인, 성녀를 정리하고 시성 절차를 더욱 죄게 되었다. 성공회 서울주교좌성당의 호수 성인인 성 니콜라나 여행자들의 호수 성인 성 크리스토퍼가 성인 명단에서 빠졌다. 그러나 그와 같은 엄격한 절차의 판정을 거쳐서 김대건 신부를 위시한 200여명의 한국 천주교 순교자들이 한꺼번에 성인의 반열에 오르게 되었다.

개혁 이후의 성공회는 교회가 특별히 기념할 인물을, 관구 의회의 승인을 받아서 예식서에 올리는 정도로 그치고 있다. 베다와 초대 캔터베리 대주교 오가스틴  등은 성인으로서가 아니라, 교회가 특히 기념하는 우간다의 순교자들(1886), 옥스포드 운동의 지도자 존 키불(1866), 17세기의 영국 시인이며 성 바울로 대성당의 참사회장이었던 존 단 등과 함께 기념된다(1979년 미국 성공회 예식서). 한국 성공회의 새 예식서는 9월 26일을 한인 순교자들을 기념하는 축일로 지키기로 했다.

성공회사에 묘한 에피소드가 하나 있다. 17세기에 청교도들과 대결해서 왕권과 국교를 옹호하다가 처형당한 차알즈 I를 왕정 복고 후에  순교자로 추모할 것을 왕명으로 정한 일이 있다. 그러나 1859년에 그 명령이 취소되었다. 성공회는 많은 가톨릭 전통을 계승했고, 옥스포드 운동으로 가톨릭 부흥의 기운이 돌았지만, 개혁 이래 성인 숭배를 거부하는 개신교의 주장을 수용해 온 셈이다. 옥스포드의 여운을 강하게 풍겨 온 한국 성공회에서도 이제 성인들을 기리는 복잡한 ‘첨례’ 절차가 크게 간소화되어 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