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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고교회(하이 쳐치)파 – 가톨릭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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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교회(하이 쳐치)파 – 가톨릭파


본 내용은 대한성공회출판부에서 1998년 5월 발행한 책 <우리 믿음 바로 알기(김진만 저)>입니다. 게시를 허락해준 대한성공회출판부에 감사드립니다.

성공회, 특히 영국 성공회 안에 고교회와 저교회가 있다고들 한다. 높은 교회와 낮은 교회가 따로 있지는 않고, 고교회관을 가진 사람들과 저교회관을 가진 사람들이 있다. 고교회파와 저교회파가 있는 것이다. 영어로는 ‘하이 쳐치 멘’과 ‘로우 쳐치 멘’이 있는 것이다.

고교회파라고 안하고 스스로를 가톨릭파라고 부르는 사람들이 있다. 이 파 사람들은 영국 교회의 역사적 계속성, 즉 가톨릭전통을 강조한다. 극단적인 경우에는, 19세기의 어떤 옥스포드 운동가가 말했듯이, 종교 개혁은 잘못된 것이었다고 생각한다. 고교회파는 교회의 권위, 주교의 권한, 성사의 본질 등에 ‘높은’ 평가와 가치를 부여한다.

이와 같은 교회관은 엘리자베스 시대에도 있었고, 성공회의 가장 고전적인 신학자로 꼽히는 후커도 17세기부터 유행한 말을 빌리자면, 고교회파 신학자였다. 후커는 교회의 가톨릭전통을 존중하고 청교도 개혁자들의 극단을 공격했다

고교회파의 거장들은 17세기 스튜워트 왕조 시대에 대두했다. 그 대표적 인물은 윌리엄 로드 대주교(1573-1645)였다. 로드는 일찍부터 칼빈주의를 반대하고, 개혁 이전의 교회 관행으로 복귀할 것을 주장했다. 그렇다고 로마 교회에 복귀할 것을 주장한 것은 아니다. 영국 교회와 로마 교회는 다같이 세계 가톨릭교회의 한 부분이라고 생각했다. 찰즈 1세의 캔터베리 대주교가 된(1633) 이후로는 영국 교회의 예전을 통일하는 정책을 강행했다. 그는 설교대보다 제대를 우선시키고, 청교도 설교자들을 탄압하고, 자기 정책을 반대하거나 따르지 않는 사람들을 처벌했다. 로드는 왕권을 하느님이 내리시는 것이라고 하는 소위 ‘신권설’의 신봉자였다. 그가 고교회주의를 장로교를 신봉하는 스콧트랜드에까지 확대 강요하려 했을 때 좌절을 맛보기 시작했다. 급기야는 국회의 탄핵을 받고, 감옥에 갇혔다가 1645년 1월에 처형당했다. 죄목은 로마 교황을 지지하는 자라는 것이었는데, 그는 개신교로서의 영국 교회에 대한 충성을 선언하고 처형을 받았다. 그로부터 4년 후에 그의 임금 찰즈가 국회에 의해서 처형되었다. 국왕이 사형당하고, 크롬웰의 공화제를 겪고, 왕정이 복고된 다음, 1689년에 소위 ‘명예 혁명’으로 입헌 군주제가 도입되면서부터 로드류의 고교회파는 설 땅을 잃었다. 대주교 한 명, 주교 8명, 사제 400명이 대륙에서 초청해 온 윌리엄 III에 대한 충성 선서를 거부하고,  일시 국교회에서 떨어져 나가서 분열 교회를 만들었다. 그러나 그들의 세력은 1800년 전후에 거의 완전히 소멸되었다.

오늘날 영국 성공회의 가톨릭파는 로드의 고교회파의 맥을 잇는 사람들이라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신권설과 교회 예전의 강제적 통일을 밀고 나가는 우를 범하지는 않는다. 그보다는 19세기 중엽에 옥스포드에서 일어난 가톨릭운동의 후예들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한국 성공회도 그런 운동의 영향을 받아서 생긴 교회이다. 이제 교회 예전으로 그 교회의 성격이나 신학의 경향을 점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