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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 십일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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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일조(십분의 일 세금)

본 내용은 대한성공회출판부에서 1998년 5월 발행한 책 <우리 믿음 바로 알기(김진만 저)>입니다. 게시를 허락해준 대한성공회출판부에 감사드립니다.

십일조를 법이나 규정의 열한번째 조문으로 알고 있는 교인이 있다고 해도 그 교인을 나무랄 수는 없다. 교회에서만 쓰는 말이고, 다른 교회 용어와 같이 어색한 한자어이기 때문이다. 십일조의 ‘십일’은  십분의 일이라는 말이고 ‘조’는 조세, 세금이라는 말이다. 수입의 십분의 일에 해당하는 곡식이나 돈을 교회에 바치는 조세, 즉 세금으로 낸다는 것이다.

십일조의 근원은 물론 성경에 있다. 신명기 14장 22-23절을 보면 이렇다. “너희는 해마다 씨를 뿌려 밭에서 거둔 소출 가운데 그 십분의 일을 떼어 두었다가 그 곡식과 술과 기름의 십일조를 소와 양의 맏배와 함께 가져다가 너희 하느님 야훼께서 당신의 이름을 두시려고 고르신 곳에서 그를 모시고 먹어야 한다.” 마태오 10장 10절에 “일하는 사람은 자기 먹을 것을 얻을 자격이 있다”라는 말이 있다. 고린도 교회에 보낸 첫째 편지 9장 7절에서 바울로는 이렇게 가르치고 있다: “자기 비용을 써 가면서 군인 노릇을 하는 사람이 도대체 어디 있습니까? 누가 포도밭을 만들어 놓고 그 밭에서 열매를 따먹지 않겠습니까? 또 도대체 누가 양을 친다면서 그 젖을 짜 먹지 않겠습니까?” 성직자는 제단에서 나오는 것을 받아 먹고 살 권리가 있다, 교인들이 바치는 곡식이나 헌금으로 생활해 나갈 자격이 있다는 말이다. 즉 교인들은 성직자를 부양할 책임을 진다는 말이고, 그 방법이 십일조를 바치는 일이라는 것이다.

옛날에는 교인이 내는 곡식이나 돈을 네 몫으로 나눠서 한 몫은 사제가 받아서 생계를 꾸리고, 교회의 유지와 보수, 가난한 사람들의 구제, 그리고 주교에게 나머지 한 몫씩이 돌아갔다. 처음에는 땅의 소유주가 십일조를 거두어서 자기 마음에 맞는 성직자에게 주었다. 그러다가 주교에게 넘겨서 주교가 수하 성직자들에게 분배하곤 했다.

영국에서는 기원 900년부터 십일조의 지불은 국법으로 의무화되었다. 중세 때 십일조를 제대로 내지 않는 사람은 교회 재판을 받고, 파문당하기까지 했다. 20세기에 들어와서 토지에 대한 일정한 액수의 국세가 부과되어서 사실상 십일조를 법으로 강요하는 일이 없어졌다. 영국의 국교회의 성직자들이 한국에 와서 선교사로 일할 때 두 가지가 미흡했다고 생각된다. 구 세실 주교 같은 예외가 있기는 했지만, 선교열이 부족했고 교인들에게 봉헌을 강조하지 않았다. 현재의 성공회는 봉헌에서 다른 어떤 교단에도 뒤지지 않는다. 그것은 선교사들이 물러가고 한국인 주교의 지도 아래 한국의 성공회로 탈바꿈한 후에 생긴 일이다.

수입의 일정 부분을 교회에 바치기로 서약하고, 그것으로 성직자를 부양하고, 교회를 운영하는 것은 당연하고 불가피한 일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그 이상을 교회에 바칠 수도 있다. 그리고 교회에 헌금하고, 불우 이웃을 돕고, 뜻 있는 사회 활동을 위해서 희사하는 것을 다 합해 보면 십일조를 훨씬 넘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이웃을 사랑하는 데 헌금이나 헌신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교인이면 교회 공동체를 세우고 유지하는 비용을 나누어 맡아야 한다는 것이다. 성경의 말씀과 교회의 전통은 교인들이 십일조를 하느님께 바치는 의무를 강조하고 있다. 교회는 교인들의 헌금으로 하느님의 사업을 추진하고, 기쁜 마음으로 십일조를 바치는 교인의 생활은 풍요로워진다. 재물이 있는 곳에 마음이 있고,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더 기쁘며, 주는 것보다 몇배나 더 큰 것을 받는다는 것이 신자의 경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