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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 에큐메니칼 공의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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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큐메니칼 공의회

본 내용은 대한성공회출판부에서 1998년 5월 발행한 책 <우리 믿음 바로 알기(김진만 저)>입니다. 게시를 허락해준 대한성공회출판부에 감사드립니다.

20세기, 특히 2차 대전 후에 ‘에큐메니칼’이란 말을 많이 하고, 또 많이 들어왔다. 희랍어로 ‘에큐메네’라는 말은 ‘인류가 사는 온 세상’이란 뜻이다. 루가 복음 첫 머리(2:1)에 아우구스투스 황제가 ‘온 천하에’ 포고령을 내렸다고 했는데, 그 ‘온 천하’가 에큐메네였다. 따라서 ‘에큐메니칼 교회’는 세상의 온 교회, 보편적 교회를 가리킨다. 교회가 동서로, 그리고 이단 소동으로 갈라지기 전의 교회는 ‘에큐메니칼 교회’였고 하나의 교회였다. 로마의 황제들이 온 교회의 주교들을 모아서 공의회를 열게 하고, 이견이 분분한 교리에 대한 일치된 의견을 정하게 한 초기 공의회는 에큐메니칼 공의회였다. 황제가 소집하고, 비용을 지불하고 공의회 결정에 구속력을 부여했다. 주교들의 결정은 황제의 재가를 받아서 비로소 효력이 발생했다.

이단 논쟁이 격화되고 교회가 분열하고, 동서 교회의 분열의 골이 점점 깊어짐에 따라 온 교회의 대표들을 한자리에 모으기가 어려워져서 어떤 공의회가 진실로 에큐메니칼 공의회인가가 분명치 않게 되었다. 어떤 공의회는 세계 교회의 일부가 모였어도 후대가 에큐메니칼 공의회로 인정하는 공의회가 있었다. 교황의 승낙 없이 동방 교회의 주교들만 모여서 열고, 니케아 신경을 완성한 381년의 제 1차 콘스탄티노풀 공의회가 그랬다.

성공회는 첫 네 번의 공의회가 진정한 에큐메니칼 공의회였다고 믿고, 그 공의회만을 인정하고 그 결정을 지지한다. 325년의 제 1차 니케아 공의회, 제 1차 콘스탄티노플 공의회, 431년의 에페소 공의회, 네 번째로 451년의 칼세돈 공의회가 그것이다. 그 네 번의 공의회 모두 이단에 대항해서 니케아 공의회가 정립한 믿음, 특히 그리스도의 인격에 관한 교리를 확인하고, 재확인하는 공의회였다.

교회에 따라 에큐메니칼 공의회로 인정하는 숫자가 다르다. 루터는 성공회와 같이 첫 네 번 공의회를, 동방 교회와 많은 개신교 교회는 첫 다섯 번 공의회를, 로마 교회는 니케아 공의회로부터 1962-65년에 열린 제 2차 바티칸 공의회까지 20여개의 공의회를 모두 에큐메니칼 공의회로 간주한다.

교황이 소집한 모든 공의회를 에큐메니칼 공의회로 치는 것은 아무래도 무리이다. 오늘날 천주교 주교들만 모인 공의회가 어떻게 ‘온 천하’의 교회를 대표할 수 있는가? 그보다는 로마 교회 이외의 모든 교회가 참여하는 세계 교회 협의회(WCC)가 더 에큐메니칼하다. 세계 교회 협의회의 한국 지부(KNCC)에는 한국의 주류 교회 전부가 참여하고 있고, 정교회도 회원이며, 심지어는 구세군까지도 들어와 있다. 콘스탄티누스가 소집한 니케아 공의회 이래 이렇게 실질적인 에큐메니칼 조직이 있어 본 적이 없다. 이 조직을 낳게 하는 데 가장 중추적인 역할을 한 것이 성공회라는 것은 당연하다. 로마 교회는 정회원으로 가입하지는 않았지만 ‘옵서버’ 자격으로 회의에 참석하고 공동 활동에 참여해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