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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 여왕과 버드(윌리엄 버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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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왕과 버드(윌리엄 버드)

본 내용은 대한성공회출판부에서 1998년 5월 발행한 책 <우리 믿음 바로 알기(김진만 저)>입니다. 게시를 허락해준 대한성공회출판부에 감사드립니다.

여왕은 엘리자베스, 버드(1543-1623)는 영국이 낳은 최대, 최고의 작곡가. 이 두  사람의 사귐은 영국 성공회와 튜더 왕조의 역사의 뜻 깊고 아름다운 한 장을 장식해 주었다.

버드는 일찍부터 궁정 음악가로 입신해서 수많은 명곡을 작곡했다. 새로 나라의 교회로 기반을 굳힌 영국 교회를 위해서 송가(앤샘)를 작곡해서 성공회 송가의 기초를 세웠다. 영국의 전통적인 대성당에서 서로 보고 노래하는 성가대를 위한 합창 기도곡으로 버드가 작곡한 ‘대 예배곡’(그레이트 서비스)은 성공회 성가곡의 압권이다. 그 속에 주옥과 같은 아침과 저녁 기도, 그리고 성찬식 성가들이 들어 있다. 기도곡은 모두 영어 가사에 곡을 붙인 정통적인 성공회 성가였다.

‘예수 다시 일어나시다’라는 아름다운 송가는 1589년에 지은 것으로 소프라노 두 사람과 합창, 그리고 악기 반주를 곁들여서 영국의 고금 작곡가들이 사랑해온 곡이다.

엘리자베스는 버드의 뛰어난 재주를 높이 평가하고 버드를 총애했다. 버드는 엘리자베스의 궁정에서 일했을 때는 물론, 다음 왕인 제임즈 1세 때에도 아는 사람은 다 아는 가톨릭교인이었다. 죽을 때까지 그 믿음을 버리지 않았다. 한편 엘리자베스는 버드와 같은 비밀 천주교인을 응징하는 막강한 권한을 가진 성공회의 수장이었다. 그리고 여러 사람이 일러주기도 했지만, 눈치 빠르고 총명한 엘리자베스가 버드의 신앙의 비밀을 몰랐을 리 없었다. 가톨릭교회를 버리지 않는 골수 천주학도가 성공회의 수장인 여왕의 바로 코밑에서 작곡가로 나라의 녹을 먹고 사는 격이었다. 그런 버드를 궁 밖으로 몰아 내라고 조르는 신하들이 없지 않았다. 그런데도 엘리자베스는 그와 같은 고발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기술적으로는 버드는 나라의 수장령이라는 법을 어긴 중죄인이었다. 그러나 여왕은 궁정 악사가 음악을 잘 하면 그만이지 그의 신앙을 문제삼을 것은 없다는 태도였다. 엘리자베스는 원래 종교 문제를 가지고 까다롭게 따지고 논쟁을 하는 것을 싫어했다. 성찬식에서 빵과 포도주가 어떻게 되느냐를 가지고 서로 찢고 뜯고 하는 것을 보고, 이것은 내 몸이고 내 피라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을 그대로 믿고 그런 줄 알고 받아 먹고 마시면 그만이라고 한 유명한 시를 남겼다. 음악에서도 같은 말을 부질없이 여러 번 되풀이해서 엿가락 늘리듯이 늘려서 부르는 라틴어 성가를 싫어했다.

버드는 가톨릭교인답게 라틴어 성가도 작곡했다. 3, 4, 5부 합창곡으로 만든 버드의 미사곡은 천하 일품이다. 성공회의 아름답고, 인간적인 일면을 엘리자베스와 버드가 잘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