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말씀과 신앙나눔 7월 26일 설교문 김현호신부(동두천나눔교회) – 소유하고자 하는 마음과 돌보고자 하는 마음

7월 26일 설교문 김현호신부(동두천나눔교회) – 소유하고자 하는 마음과 돌보고자 하는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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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유하고자 하는 마음과 돌보고자 하는 마음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말씀을 드립니다. 아멘.

 

지난 20()에 소행성 하나가 지구를 지나갔습니다. 소행성의 이름은 백금소행성입니다. 행성 자체가 백금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입니다. 전문적인 이름으로 소행성 2011UW158이라 불립니다. 희소자원인 백금이 1억 톤 가량 매장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 백금 가치만 54000억 달러(62159400억원)가 넘는다고 합니다. 우리나라 년 예산이 380조이니, 이 행성의 가치는 우리나라가 16년 동안 사용할 수 있는 예산규모입니다. 가치가 이렇게 크다보니, 전 세계가 이 행성을 주목하고 있고, 특히 우주광산 업계에서는 중장기 미래를 좌우할 것으로 여겨지면서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는 뉴스를 들었습니다. 우주광산 업체 플래니터리리소시스(Planetary Resources)나 미 항공우주국(NASA) 등이 소행성 채굴 사업에 사활을 걸고 있다고 합니다.

 

이제 사람들은 이 지구를 소유한 것도 모자라 이 우주를 소유하고자 합니다. 과연 이러한 소행성의 주인은 누구일까요? 누가 소행성에 도착하여 채굴할 권리를 가질 수 있을까요? 유엔이 정한 우주에 대한 법규가 있는데, 이에 따르면 그 누구도 우주의 것을 사유하거나 점유할 수 없다고 규정되어 있다고 합니다. 지구 밖의 것은 어느 누구도 개인적으로 소유하거나 점유할 수 없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미국에서는 이러한 규정을 교묘하게 피하며 이런 법령을 만들었다고 합니다. ‘지구 밖 우주의 자원을 소유하거나 점유하지는 못하나 사용할 수는 있다는 규정을 만들었다고 합니다. 상황이 이러니, 앞으로 우주광물의 채굴기술이 더욱 발달되면 치열한 경쟁이 일어날 것은 불을 보듯 뻔합니다. 우리 인간들의 소유욕은 끝이 없어 보입니다.

 

오늘 성경말씀에는 대조적인 두 인물이 나옵니다. 하나는 이스라엘의 영웅으로 칭송받는 다윗과 다른 하나는 보리빵 다섯 개와 작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고 있는 이름 모를 소년입니다. 다윗과 하느님의 관계를 이해하고자 할 때는 각각의 시기를 구별하며 접근할 필요가 있습니다. 오늘의 성경에서 등장하는 다윗은 어린 나이에 골리앗을 쓰러뜨린 소년 다윗이 아닙니다. 어느덧 왕과 같은 존재가 된 다윗으로 이스라엘 백성들로부터 칭송을 받고 있는 시기의 다윗입니다. 이런 다윗이 어떠한 일을 꾸미고 있습니까? 그의 부하 장수인 우리야의 아내, 바쎄바를 탐하고자 결국 우리야를 전쟁터에 내보내어 죽게 합니다. 왕과 같은 존재로서 다윗이 무엇이 부족했기에 그의 부하장수의 아내까지 소유하려 했을까요?

 

우리 마음에 있는 소유욕은 우리에게 있어 무엇이 부족해서 생기는 마음이 아닙니다. 그저 더 갖기 위한 욕심일 뿐입니다. 900원을 가지고 있으면 1,000원을 만들고 싶고, 9,000원을 가지고 있으면 10,000원을 만들고 싶고, 9,000만원이 있으면 1억을 만들고 싶어 하는 마음입니다. 현재 가지고 있는 것에 만족하지 못하는 마음입니다. 더 채우고자 하는 마음입니다. 오늘 성경말씀에 등장하는 다윗의 모습은 이러한 소유욕의 극치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예수님 주변에는 수많은 군중들이 따라 다녔습니다. 예수님께서 병자들을 고치시는 기적을 보고 많은 사람들이 예수를 따랐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오늘 복음말씀에도 예수님은 갈릴래아 호수 맞은 편 산등성이에 오릅니다. 그러자 수많은 군중이 함께 몰려옵니다. 예수님은 이들을 먹일 궁리를 하시면서 제자들에게 묻습니다. “이 사람들을 다 먹일 만한 빵을 우리가 어디서 사올 수 있겠느냐?” 이에 대해 제자 필리보는 대답하기를, “이 사람들에게 빵을 조금씩이라도 먹이자면 이백 데나리온어치를 사온다 해도 모자라겠습니다.”라고 합니다. 당시 1 데나리온은 하루 품삯에 해당합니다. 오늘 하루 품삯이 대략 10만원이라면 이백 데나리온이라면 오늘날 화폐가치로 환산하면 2,000만원에 해당합니다. 매우 큰돈입니다. 예수님께서 이렇게 큰돈을 가지고 다닐 이유는 만무합니다. 오늘 성경에 의하면 예수 일행이 가지고 있는 것이라고는 한 아이가 내어 놓은 보리빵 다섯 개와 작은 물고기 두 마리가 전부인 것 같습니다. 그런데 어떠한 일이 일어났습니까? 그곳에 있는 성인 남자들만 5,000명이었는데, 모두 먹고도 12광주리가 남았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가능했던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요?

 

저는 오늘 복음말씀에 등장하는 소년의 태도가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생각합니다. 그의 모습은 왕이 된 다윗의 태도와는 사뭇 다릅니다. 왕이 된 다윗에게는 소유하고자 하는 마음이 강했으나, 이 소년의 마음은 달랐습니다. 저는 이 소년이 가진 마음을 돌보고자 하는 마음이라 부르고 싶습니다. 이 소년이 보여준 태도는 돌보고자 하는 마음의 태도였습니다. 예수님 주변에 모인 군중들을 위해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을 기꺼이 내어 놓을 수 있는 마음! 과연 그 마음의 출발은 어디에 있겠습니까? 나이어린 소년에 지나지 않았지만 군중들을 돌보고자 하는 예수님의 마음을 그는 그대로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하지 않았겠습니까!

 

인류의 역사는 소유하고자 하는 마음의 역사였습니다. 서로 더 많이 가지고자 하다 보니 갈등이 생기고 급기야 전쟁까지 일어납니다.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따먹은 것도 이로부터 시작된 것입니다. 가인이 아벨을 죽인 것도 이와 마찬가지입니다. 애급땅에서 파라오가 이스라엘 백성을 노예로 데리고 있고자 하는 것도 결국은 더 많이 소유하고자 하는 데서 온 것입니다. 이에 대해 예수님은 소유하고자 하는 마음이 아닌 돌봄의 마음을 가지라고, 실제로 우리는 그럴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자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소유하는 마음이 커지면 그 결과는 어떻게 되겠습니까? 이 지구상의 자원이 고갈되니 이제 지구 밖 우주에 있는 자원을 탐하려 합니다. 이 우주의 자원조차 고갈되면 그 다음은 어떻게 하겠습니까?

 

돌봄의 마음은 기적을 만들어 냅니다. 오늘 어린 소년이 가진 돌봄의 마음은 5,000명을 먹이는 기적을 만들어냈습니다. 이 시대는 기적을 요하는 시대입니다. 위기가 아닌 곳이 없을 정도입니다. 식량위기, 환경위기, 자원위기, 질병위기, 에너지 위기 등등. 위기가 너무나도 크다보니 사람들은 기적을 요구합니다. 진정 이러한 위기들 앞에 이를 극복할 해법은 무엇일까요? 저는 우리들이 소유하고자 하는 마음의 지배로부터 자유하고 돌보고자 하는 마음을 키울 때 가능하리라 믿습니다.

 

오늘은 안나와 요아킴의 축일이기도 합니다. 이들은 성모 마리아의 부모님이십니다. 안나와 요아킴 역시 돌보는 마음이 가득했던 존재들이었습니다. 이들의 이런 태도가 성모 마리아를 존재케 하였습니다. 그리고 성모 마리아 역시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돌봄의 마음이 가득했기에 정체모를 생명을 버리지 않고 품을 수 있었습니다. 그 생명이 바로 예수님이었습니다. 우리가 안나과 요아킴이 지녔던 태도를 본받는다면, 지금 당장 예수님을 볼 수는 없지만, 예수님을 잉태할 마리아를 키울 수는 있을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을 들여다보시기 바랍니다. 소유하고자 하는 마음이 강한지, 아니면 돌보고자 하는 마음이 지배적인지를 분별해 보시기 바랍니다. 오늘날 우리의 돌봄이 필요한 영역은 매우 많습니다. 기도할 제목이 많다는 이야기입니다. 작게는 우리 가족과 신앙공동체 안에서, 좀 더 넓게는 우리 마을과 민족 안에서 우리의 돌봄이 필요한 부분이 참으로 많습니다. 어떻게 우리는 돌보는 마음을 키울 수 있을까? 매일 아침 이렇게 질문하며 시작해 보시기 바랍니다. “오늘 나는 누구를 돌봐야 하는가?”, “누가 나의 돌봄을 기다리고 있지?” 그리고 잠을 자기 전 이렇게 스스로에게 물어보시기 바랍니다. “난 오늘 내 돌봄이 필요한 이들에게 최선을 다했나?” 이렇게 질문하며 살다보면 우리의 마음이 돌보고자 하는 마음으로 가득 차게 되리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말씀을 드렸습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