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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26일 설교문 양만호신부 (수원나눔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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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소용이 없습니까

 

오늘 복음에는 두 개의 기적 이야기가 나옵니다. 소위 오병이어의 기적과 물 위를 걷는 기적. 오늘까지 그에 대해 수많은 해석이 있었습니다. 어쩌구 저쩌구 어쩌구 저쩌구…

 

지난 주간 몇 차례 읽어도 도무지 다가오는 구절이 없어 설교를 어떻게 쓰나 하고 걱정하며 어젯밤 다시 뭐가 있겠나, 그래도 봐야지 하며 살펴 보았을 때 가슴에 찌릿하며 들어오는 구절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제자였던 안드레아의 푸념이었습니다.

 

예수는 자신이 할 일을 이미 마음 속에 작정하고 제자 필립보를 살짝 떠 봅니다. “이 사람들을 다 먹일 만한 빵을 우리가 어디서 사올 수 있겠느냐?” 그러자 필립보는 이렇게 대답하지요. “이 사람들에게 빵을 조금씩이라도 먹이자면 이백 데나리온어치를 사온다 해도 모자라겠습니다.” 한 데나리온이 하루 품삯이었으니까 이백 데나리온이면 대충 따져도 지금으로 치면 돈 천만원은 되는 것이지요. 스승께서 또 말도 안 되는 말씀을 하시는구나 하는 제자의 반응이지요.

 

옆에서 그걸 듣고 있던 시몬 베드로의 동생 안드레아. 약간의 짜증과 비아냥을 담아서 이렇게 얘기하지요. “여기 웬 아이가 보리빵 다섯 개와 작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고 있습니다마는 이렇게 많은 사람에게 그것이 무슨 소용이 되겠습니까?” 엘리사의 제자도 똑같은 말을 하지요. 보리떡 스무 개와 햇곡식 이삭을 나누어 먹이라는 말씀에 “어떻게 이것을 백 명이나 되는 사람들 앞에 내놓을 수 있”냐고.

 

우리는 늘 이 안드레아와 엘리사의 제자의 마음으로 살아가지 않나 싶습니다. 가진 것이라곤 쥐벼룩만큼밖에 없으니 어찌할까 하는 마음으로. 자신의 처지에 좌절하고 실망하여 어떤 꿈도 희망도 품지 못하고 어떤 사랑도 바라지 못하는.

 

무슨 소용이 되겠습니까. 주일 출석 신자가 요거밖에 안 되는데 무엇을 할 수 있겠습니까. 사제들이 다 저 모양인데 무엇을 한단 말입니까. 일년 예산이 이거밖에 안 되는데 무슨 계획을 세울 수 있습니까.

 

뭘 할 수 있겠습니까. 야당이 그 모양인데. 청와대도 경찰도 검찰도 사법부도 다 한 통속인데. 언론은 다 그놈들 편인데. 그렇게 시위를 해도 도무지 하나도 바뀌는 것이 없는데.

 

무슨 소용이 있겠냐고, 그렇게 해 봤자. 고작 가진 건 그것뿐인데 그것을 가지고 무엇을 할 수 있겠냐고.

 

우리는 부르고 있습니까. 간절히 하느님을 부르고 있습니까. 하느님 아닌 것을 더 간절히 부르고 있지는 않습니까. “야훼는, 당신을 부르는 자에게, 진정으로 부르는 자에게 가까이 가시고 당신을 경외하는 사람의 소원을 채워 주시며 그 애원 들으시어 구해 주신다. (시편 145:18-19)”고 하는데 말입니다.

 

엘리사는 제자의 푸념에 이렇게 답하지요. “이 사람들이 먹도록 나누어 주어라. 야훼께서, 이들이 먹고도 남을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하느님을 신뢰한 것이지요. 하느님의 말씀을 붙들고 있었던 것이지요. 하느님께서 우리 안에서 살아 움직일 때 우리가 가진 작은 것이 얼마나 큰 일을 할 수 있는지요. 웬 아이가 가지고 있는 보리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충분하지요.

 

‘하느님의 신비가 얼마나 넓고 길고 높고 깊은지’ 우리는 맛본 적이 있습니까. 아직 맛보지 못했다면, 우리가 ‘사랑에 뿌리를 박고 사랑을 기초로 하여 살아가지’ 않기 때문이지요. ‘인간의 모든 지식을 초월한 그리스도의 사랑’을 우리가 아직 모르기 때문이지요. 기적은 무엇보다도 이 사랑에 있습니다. 이 사랑이 곧 하느님의 능력입니다.

 

희망이 왜 없습니까. 비어있는 제 가슴만 바라보기 때문입니다. 복잡한 제 머릿속으로만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 안에서 힘차게 활동하시면서 우리가 바라거나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풍성하게 베풀어 주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 (에페 3:16-20)

 

2015. 7. 26 연중 17주일 열왕하 4:42-44 시편 145:10-20 에페 3:14-21 요한 6:1-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