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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 원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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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죄

본 내용은 대한성공회출판부에서 1998년 5월 발행한 책 <우리 믿음 바로 알기(김진만 저)>입니다. 게시를 허락해준 대한성공회출판부에 감사드립니다.

성공회 신조 9조가 원죄를 이야기한다. 원죄라는 것은 (후천적으로) 아담을 따르는 데서 오는 것이 아니고, 모든 인간의 본성의 결함이며 타락상인 것이다; 아담의 후손은 선천적으로 죄를 타고 나며, 그 본성이 악을 저지르게 되어 있고, 따라서 육은 언제나 영을 거슬러서 육욕에 사로잡히게 한다; 세례 받은 신도들은 원죄 때문에 단죄받지는 않지만, 인간의 정욕은 그 자체가 죄의 본질을 가지고 있다–라는 것이 그 신조의 정의이다.

원죄의 성경적 근거는 바울로의 로마서 5장 12절 이하의 말이다: “한 사람이 죄를 지어 이 세상에 죄가 들어 왔고 죄는 또한 죽음을 불러들인 것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어 죽음이 온 인류에게 미치게 되었습니다.”

중세에 모든 인간이 죄를 안고 태어나기 때문에 원죄는 분명히 있고, 세상 어느 누구도 원죄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는 생각이 굳어졌다. 아담이 지은 죄가 후손에 물려 지느냐, 혹은 아담의 죄의 상태나 결과가 유전되느냐 하는 논쟁은 번거롭다. 중세의 대표적인 신학자 토마스 아퀴나스(1225경-74)는 타락 이전의 아담은 천성적으로 ‘순수한 본성’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 본성을 상실함으로써 영혼과 육체가 합친 인간과 같은 존재로서 이성에 충실할 수 있는 본성을 유지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한편 원죄는 인간 본성인 육욕으로, 모든 인간이 태어날 때부터 타고난다는 것을 강조한 아우구스티누스의 주장이 꾸준히 그 맥을 유지하였는데, 종교 개혁기에 그것이 루터와 칼빈의 비관론을 통해서 다시 강력하게 대두했다. 그 두 개혁자들은 원죄는 곧 육욕이고, 원죄 때문에 인간은 ‘완전히’ 타락해서 완전히 자유를 잃고, 세례를 받은 이후에까지 그 원죄는 존속한다고 했다.

가톨릭학자들은 개혁자들과 달리 원죄를 정의할 때 육욕이라는 것을 말하지 않고, ‘인간을 거룩하게 만들어 주는 은총’의 상실을 원죄로 규정한다. 그러다가 17세기의 피우스 V세가 인간의 본성과 낙원에서의 초본성을 구별한 아퀴나스의 이론을 근거로 원죄에서 육욕의 요소를 완전히 제거해 버렸다. 그리고 세례를 받지 않은 사람도 자유로운 의지를 올바르게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을 인정했다. 18 세기 이후 자연과학과 자유주의 개신교 사상이 대두함으로써 원죄 사상이 희석되거나 완전히 포기되는 일이 생겼다. 한편 가톨릭과 일부 개신교는 원죄를 강하게 재확인하게 되었다.

인간이 선천적으로 원죄를 타고난다면, 죄를 지었을 때 그 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어려운 문제가 있다. 그러나 인간은 누구나 날 때부터 죄를 지을 수 있는 용의와 상태에 있다는 생각은 덕을 쌓는 데 크게 도움이 될 수 있다. 인간의 의지만으로는 하느님을 제대로 따를 수 없고 선행을 할 수 없기 때문에, 하느님의 은총에 의지하며 사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본분이다. “죄는 세상에 군림하여 죽음을 가져다 주었지만 은총은 군림하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을 하느님과 올바른 관계에 있게 하고 영원한 생명에 이르게 합니다”(로마 5: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