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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 윌리엄 틴데일(?1494-1536) – 영역 성경의 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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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리엄 틴데일(?1494-1536) – 영역 성경의 꽃

본 내용은 대한성공회출판부에서 1998년 5월 발행한 책 <우리 믿음 바로 알기(김진만 저)>입니다. 게시를 허락해준 대한성공회출판부에 감사드립니다.

틴데일은 파란 많은 40평생을 성경과 개혁 신학에 온 마음과 온 몸을 바치고 끝내 이국 땅에서 순교했다. 루터의 독일어 번역이 나온 지 14년 후에, 독일어로 성경 전부가 번역되어 나온지 바로 두 해 뒤에, 성경을 영어로 번역해 냈다는 죄목으로 처형당한 것이다.

1520년대에도 성경을 일반 서민이 읽을 수 있는 영어로 번역하는 것은 법으로 금지되어 있었다. 성경은 영어로 번역할 수 없고, 무식한 평신도들이 영어 성경을 갖는 것은 불법이며, 영어 성경은 그들을 몽땅 이단자로 만들 것이라는 것이 영어 성경을 금하는 이유였다. 그 당시는 독일에서 불기 시작한 종교 개혁 바람에 영국의 헨리 8세와 영국 교회가 갖가지로 저항하던 때이기도 했다.

대학을 나온 틴데일은 곧 성직자와 평신도들이 너무나 무지하여, 교인들이 성경을 모국어인 영어로 읽지 않고서는 진리에 도달할 도리가 없다고 생각해서 성경을 영어로 번역하는 계획을 세웠다. 틴데일은 1523년에 학자로서 이름이 높던 런던의 탄스톨 주교를 찾아가 도움을 청했다. 주교는 일언지하에 틴데일의 청을 거절했다. 탄스톨은 교회의 보수파 지도자였다. 틴데일은 그 길로 영국을 떠나서 대륙으로 갔다. 그리고 그 길은 다시는 고국 땅을 밟을 수 없는 순교의 길이 되었다.

첫 영역본은 퀼른에서 1525년에 인쇄에 들어 갔다. 그러나 경찰의 습격으로 중단되고, 영국 교회의 주교들과 토마스 모아, 급기야는 캔터베리 대주교까지 가세해서 틴데일을 공격하고 단죄했다. 한편, 영국의 첩자들이 틴데일을 잡으려고 혈안이 되어 찾아 다녔다. 거기다가 해적판이 돌기 시작했다. 한때 틴데일의 친구이며 조력자였던 조지 조이가 해적판 인쇄에 가담하고 틴데일의 이름을 도용해서 주석본을 내는 일이 벌어져서 틴데일은 말할 수 없는 슬픔과 배신감을 느꼈다. 그러나 영어 성경을 고국의 동포들에게 선사하겠다는 결심과 기개에는 추호의 동요도 없었다.

틴데일 이전에도 성경은 여러 번 영어로 번역되었다. 고대 영어 시대에 복음서가 번역되었다. 그 때만 해도 영어로 번역했다고 해서 징벌을 받지는 않았다. 가령 14세기의 위클리프도 번역했다. 그러나 그것은 원어에서 번역한 것이 아니고 구어 라틴어 번역, 소위 불가타에서 번역한 것이었다. 틴데일의 영어 성경은 원어, 즉 히브리말에서 구약을, 희랍어에서 신약을 번역한 처음 번역이었다. 그 다음 틴데일은 간결하고, 정확하고, 아름다운 영어를 구사해서 후대의 모든 번역의 기초가 되었다. 제임즈 왕의 위촉으로 편찬된 소위 흠정 성서(1611)의 대부분이 틴데일의 번역을 그대로 옮긴 것이라는 것을 보아도 알 수 있다.

1535년 브뤼셀 근처에서 체포되어서, 다음 해에 목 졸린 채 화형을 당했다. 한편 영국 교회는 그로부터 7년 전에 사실상 로마 교회와 갈라섰고, 약 십년 후에는 헨리가 죽어서 교회가 본격적으로 개혁되기 시작했다. 틴데일은 열띤 논쟁 상대였던 토마스 모아와 함께 시운을 타지 못한 난세의 선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