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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 율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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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법

본 내용은 대한성공회출판부에서 1998년 5월 발행한 책 <우리 믿음 바로 알기(김진만 저)>입니다. 게시를 허락해준 대한성공회출판부에 감사드립니다.

율법은 하느님이 내리신, 사람이 올바르게 사는 법이다. 예수님의 시대에 율법학자라는 사람들이 있었다. 예수님을 떠볼려고, 시험을 해서 곤경에 떨어뜨리려고 어려운 질문을 던지고, 예수님과 그의 제자들이 율법을 어긴다고 매도하던 사람들이다. 바울로도 율법을 지킨다는 유대인들 때문에 어지간히 괴로움을 당했다. 자기가 유대인이라는 것을 내세우고, 하느님의 뜻과 율법을 잘 알고 지킨다고 자부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런 사람이 남을 가르치면서 왜 자신은 가르치지 못합니까? 또 남더러는 도둑질을 하지 말라고 하면서 왜 자신은 도둑질을 합니까?(로마서 2:21)하고 한탄했다. 바울로는 회심 전에 열렬하고, 모범적인 바리사이파 율법학자였다.

우리와는 무관한 예전, 예식에 관한 율법이 출애굽기와 레위기의 상당부분에 나와 있다. 그 다음 도덕, 윤리, 사회법이 있다. 출애굽기 20장에 나오는 십계명이 대표적인 법이다. 이것은 하느님이 모세에게 주신 계명이다. 십계명은 그리스도교 윤리의 기본이다.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손은 손으로…”(출애 21:23)하는 유명한 법도 있다.

시편을 보면 여러 편에서 하느님의 법을 지키는 것이 얼마나 즐거운 일인가를 노래하는 대목이 나온다. 176절이라는 긴 시편 119편은 그 전체가 율법을 지키며 사는 기쁨을 노래한 것이다.

예수님은 당신이 “율법이나 예언서의 말씀을 없애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아라. 없애려 온 것이 아니라 오히려 완성하러 왔다”(마태 5:17)라고 말씀하셨다.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파 사람들의 그릇된 율법관, 즉 율법이 인간을 위해서 있지, 인간이 율법을 위해서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모르고 있는 점을 나무라셨다. 안식일의 주인을 몰라 보는 그들을 힐난하셨다. 그러나 율법 그 자체는 일점 일획도 없어지지 않으리라고 말씀하셨다(마태 5:17-20). 성 바울로도 “우리가 믿음을 내세운다고 해서 율법을 무시하는 줄 아십니까? …오히려 율법을 존중합니다”(로마 3:31)라고 했다.

그러나 사람들이 율법을 지키지 않는다는 것이 분명했다. “너희에게 율법을 제정해 준 이는 모세가 아니냐? 그런데도 너희 가운데 그 법을 지키는 사람은 하나도 없다”(요한 7:19). 거기다가 율법 자체에 제한이 있다. 가령 할례는 율법을 지키지 않는 사람에게는 있으나마나 한 것이다. 바울로는 율법의 제한을 이렇게 설명했다: “율법 아래 사는 사람들은 그 율법이 명령하는 모든 것의 지배를 받습니다. 그래서 결국 모든 사람은 말문이 막히게 되고 온 세상은 하느님의 심판에 복종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율법을 지키는 것으로는 아무도 하느님과 올바른 관계를 가질 수 없습니다. 율법은 단지 무엇이 죄가 되는지를 알려 줄 따름입니다”(로마서 3:19-20). 율법으로는 구원받을 수 없고 오직 예수님을 믿음으로써만 구원을 얻는다는 것이 바울로의 신념이었다. 율법이 없었으면 죄도 없었을 것이라는 것도 바울로의 지론이었다. 법과 규정의 조문에 매여서 그 정신을 망각하는 율법주의는 오늘날의 사회에도, 교회에도 성행하는 어리석은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