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100문 100답 77. 이름 난 카타리나들

77. 이름 난 카타리나들

757
0
공유

이름 난 카타리나들

본 내용은 대한성공회출판부에서 1998년 5월 발행한 책 <우리 믿음 바로 알기(김진만 저)>입니다. 게시를 허락해준 대한성공회출판부에 감사드립니다.

우리 성공회 여자 교우들 중에 카타리나라는 신명을 가진 사람들이 많다. 카타리나는 인기있는 성녀이다. 그런데 교회사에 이름을 남긴 카타리나들이 많아서 어느 카타리나를 호수 성인으로 모셨는지가 분명치 않은 경우가 많다. 한 때 성가 수녀원의 원장으로 일했고 현재는 성공회 대학교에서 교수로 재직하고 있는 오인숙 수녀님은 모든 교우들의 존경과 사랑을 받는 분이다. 수녀님의 호수 성인은 시에나의 카타리나이다.

알렉산드리아의 카타리나: 동정녀 순교자. 전설적인 성녀로서 4세기 경에 살던 것으로 전해 온다. 그 근거가 희박해서 1969년에 교황청이 성녀 목록에서 삭제했다. 알렉산드리아에서 철학자들과 궁정인들 앞에서 그리스도교 믿음을 옹호했고, 황제는 그를 고문 끝에 죽였다고 한다. 그의 시체가 수 백년 후에 시나이산에서 발굴되었는데 천사들이 알렉산드리아에서 그리로 날라 왔다는 전설이 있다. 기념일은 2월 25일이었다.

제노아의 카타리나(1447-1510): 제노아의 명문 출신으로 1463년에 제노아의 한 명문가의 아들과 결혼했는데, 그 다음 해에 돌연히 회심해서 남편을 설득해서 결혼의 의무에서 풀려났다. 그의 남편도 프란시스코 수도회의 제 3부 회원이 되고, 카타리나 자신은 제노아의 성 라자로 병원에서 말기 환자들을 돌보는 ‘자비의 여인들’ 회원으로 봉사했다. 카타리나는 빈번히 단식하고, 당시로서는 매우 드물게 매일 성찬을 받았다. 만년에는 그 병원의 후원자로 환자들을 간호하고, 병을 앓던 남편을 끝까지 돌보았다. 카타리나는 연옥에 대한 책을 써 내기도 했고, 평생 명상 생활을 계속했다. 교황청은 1737년에 그를 성녀로 선포했다. 기념일은 9월 15일.

시에나의 카타리나(1347-1380): 제노아의 카타리나는 끝내 제 3부 회원이 되지 않고 혼자서 수도에 힘썼지만, 시에나의 카타리나는 도미니코의 제 3부 회원이었다. 일곱 살때 환상으로 예수님을 뵙고, 평생 동정녀로 살 것을 서약했다. 1364년 경에 시에나에서 도미니코의 제 3부 회원이 된 후로는 성직자와 평신도들을 모아서 선교했다. 1376년에는 피렌체 시민들의 요청을 받아들여 아비뇽으로 가서 그레고리 XI를 만났다. 로마와 아비뇽에 두 사람의 교황이 동시에 교황 노릇을 하던 대 분열 시대의 일이다. 카타리나의 청을 받아들여 그레고리는 자신의 교황청을 로마로 옮겼다. 그 후 카타리나는 로마에 살면서 교황 우르반 VI을 도와서 교회의 일치를 위해서 진력했다. 1939년에 교황 피우스 XII는 아시시의 프란시스와 시에나의 카타리나를 이탈리아의 호수 성인으로 선포했다. 카타리나는 1461년에 성녀로 시성되었다. [대화록]이라는 책을 내고, 1970년에는 ‘교회 박사’ 칭호를 받았다. 기념일은 이전에는 4월 30일이었는데, 1969년 이래로는 4월 29일로 정해졌다.

카타리나 수녀님의 호수 성인은 누구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