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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 저교회(로우 쳐치)파 – 복음주의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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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교회(로우 쳐치)파 – 복음주의파

본 내용은 대한성공회출판부에서 1998년 5월 발행한 책 <우리 믿음 바로 알기(김진만 저)>입니다. 게시를 허락해준 대한성공회출판부에 감사드립니다.

영국 성공회 안에 고교회-가톨릭파와 함께 막강한 세를 과시하는 저교회-복음주의파가 있다. ‘하이 쳐치 맨’에 대항해서 ‘로우 쳐치 맨’이라는 명칭이 만들어 진 것은 18세기 초였다. 원래는 자유주의(리버랄)파를 가리키는 말이었는데, 한동안 안쓰이다가 19세기 중엽, 옥스포드 운동에 즈음해서 다시 쓰이게 되었을 때는 자유주의파가 아니라, 가톨릭파와 맞서는 복음주의파를 가리키는 말이 되었다. 18세기 초의 자유주의파는 넓은 ‘광교회’파(부로드 쳐치 맨으로 불리게 되었다. 광교회파는 교회의 교리나 예식법(루부릭)을 엄격하게 정의하는 것에 반대하고 넓고 자유롭게 해석하자는 사람들이다.

저교회-복음주의파는 넓은 의미에서 개신교 교회를 가리킨다. 그리고 1948년에 조직된 독일의 모든 개신교(에방게리쉐 키르혜 도이취란츠) 교회를 가리킨다. 또한 스위스의 칼빈주의 교회와 대조되는 루터교회를 지칭하기도 한다.

영국 성공회에서는 개인적 회심을 강조하고, 그리스도의 속죄의 죽음을 믿음으로써 구원을 얻는다는 것을 특별히 힘주어 고백하는 사람들을 복음주의파라고 한다. 18세기 영국인들의 생활과 교회의 성직자들은 게으르고 세속적이었다. 바로 그 시절에 태동한 것이 복음주의 운동이었다. 그들은 교회에서 떨어져 나간 감리교와는 달리 영국 교회를 버릴 생각은 결코 하지 않았다.

복음주의파의 종교적 열정과 경건은 많은 사람들의 지지와 호응을 받았다. 그러나 존 웨슬리가 사람들의 빈축을 샀듯이 복음주의파의 지나친 열정을 혐오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케임부리지의 대학생 여섯 명이 바로 그런 이유 때문에 대학에서 쫓겨난 일은 유명하다. 그러나 19세기에 복음주의파는 해외 선교에 큰 역할을 했다. SPG와 쌍벽을 이루는 ‘교회 선교회’(쳐치 미슈너리 소사이어티, CMS)는 그들이 세운 선교 단체이다. 그리고 사회 사업에도 큰 공을 세웠는데, 노예 해방과 공장 노동법의 제정 등에서 그들이 보인 열성과 공헌은 대단한 것이었다.

복음주의자들은 성경이 성령의 감동으로 쓰여졌다는 것과 교회와 신앙의 유일한 근거라고 주장한다. 교회가 교인에게 성경 해석을 강요할 수 없다고 한다. 예수의 재림을 믿고, 예식은 최소한으로 줄이고 설교를 절대시한다. 단순히 세례를 받음으로써 영적으로 거듭난다는 교리를 부인하고, 제사로서의 성찬식을 거부한다.

복음주의파는 전통적으로 로마 교회를 의심하고, 가톨릭교리와 교회의 회복을 주장한 옥스포드 운동, 그리고 고교회 가톨릭파의 교리를 배격한다.

1906년에 일단의 성공회 성직자들이 성공회 복음주의 그룹 운동이라는 것을 시작했다. 그들은 복음주의를 지나친 보수주의로부터 해방시키기를 원했다. 필요하면 자연과학의 도움마저도 받아들여서 진리를 추구하기를 원했다. 그들은 그리스도교의 복음이 경제와 사회에 미칠 수 있는 영향을 추구하려 했고, 모든 교인들의 일치를 위해 노력하려 했다. 이것은 전통적인 저교회-복음주의의 엄청난 발전이다. 그래서 고교회와 저교회의 이분법이 점점 무의미해져 온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