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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 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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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사

본 내용은 대한성공회출판부에서 1998년 5월 발행한 책 <우리 믿음 바로 알기(김진만 저)>입니다. 게시를 허락해준 대한성공회출판부에 감사드립니다.

우리가 교회에서 드리는 성찬식이 제사냐, 아니냐 하는 것으로 종종 논쟁도 벌이고 고민도 하게 된다. 이 예식에서 우리가 바치는 빵과 포도주가 제물이냐, 아니냐 하는 것도 논쟁 거리가 될 수 있다. 종전의 예문에는 “이 빵과 이 잔을 주의 완전한 제물로 드리나이다”란 기도가 있고, 곧 이어서 “아버지 천주여, 이 제사를 받으시고…” 라고 성찬식을 분명히 제사로 정의하는 대목이 있었다. 이번의 개정 예식에서는 제사란 말은 보이지 않지만, ‘제물’ 과 ‘예물’이란 말에 ‘제사’의 여운과 암시가 엿보인다.

제사라고 하면 우리는 우리가 드려온 집안 제사나 차례를 생각한다. 이조시대에 정착된 제사 제도에는 제주가 있고, 제상이 있고, 제상에 예물을 차려 놓는 법식이 있고, 제사의 표준 예식이 있다. 제사는 반드시 종가에서 지내고, 종손이 제주가 된다. 예물은 조상의 신령에게 바쳐지고, 조상이 내려 와서 자손들이 차려드리는 예물을 먹는다고 생각한다. 조상이 들고 난 다음 그 예물을 자손들이 나누어 먹는 소위 음복으로 제사가 끝난다.

우리의 제사 제도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 보면, 옛 히브리인들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우리도 지금과 같이 격식화한 예물이 아니라 산 짐승을 제물로 드린 때가 있었다. 히브리인들은 신에게 희생 제물을 바쳤지만, 우리는 조상들과 천지 신명께 제물을 드렸다. 거기에 불교와 도교와 무속이 한데 얽혀서 구약의 제사보다 그 종류가 더 많고 복잡했다.

우리 제사가 이조 때 규범화되었듯이 유대인들의 제사도 레위기에 나오는 사제 제도가 확립되면서부터 예루살렘의 성전이 파괴된 70년까지 계속되었다. 바빌로니아의 포로 생활 후에 유대인들이 산지사방으로 흩어져서 ‘디아스포라’로 살 때부터 희생 재물보다도 정성이 더 중요하다는 생각이 퍼지게 되었다. 호세아 6장 6절의 “내가 반기는 것은 제물이 아니라 사랑이다. 제물을 바치기 전에 이 하느님의 마음을 먼저 알아 다오”하는 말이 그것이다.

예수께서 위의 호세아의 정신을 그대로 가르치셨다: “너희는 가서 ‘내가 바라는 것은 동물을 잡아서 내게 바치는 제사가 아니라 이웃에게 베푸는 자선이다’ 하신 말씀이 무슨 뜻인가를 배워라”(마태오 9:13).

신약이 전하는 것은 예수님이 속죄의 희생 제물로 당신 자신을 바쳤다는 것과 그 희생의 값이 무한하다는 것, 그리고 예수님 자신이 사제이시라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스스로 대사제로서 당신 자신을 희생 제물로 드리셨고, 사람들이 그 사건을 기억하도록 감사제를 설립하셨다는 것이다. 이것이 우리 제사와 예수님이 세우신 감사제의 차이이다. 예수님은 제주이시고, 동시에 바쳐지는 예물이시다. 그리고 그 예물이신 예수님의 몸과 피를 예식에 참여한 사람들이 음복하는 것이고, 그 음복의 효험으로 음복자와 제주이자 희생 제물이신 예수님이 혼연 일체가 되는 것이다. 한편 신자들은 신자들대로 “우리 자신을 감사와 찬양의 산 제물로” 바친다(새 예식문). 재래식 우리 제사는 애당초 우상 숭배가 아니다. 그러나 민속신앙과의 혼동으로 우상숭배가 될 위험성도 있었다. 그래서 새 예식서는 천주교와 같이 올바른 지침을 곁들여 융통성 있는 상장 예식을 지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