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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4. 존 칼빈(1509-1564) – 제네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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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칼빈(1509-1564) – 제네바

본 내용은 대한성공회출판부에서 1998년 5월 발행한 책 <우리 믿음 바로 알기(김진만 저)>입니다. 게시를 허락해준 대한성공회출판부에 감사드립니다.

칼빈은 프랑스의 종교 개혁가로 원래는 법률을 공부한 법학도였다. 법조인으로 대성하기를 바라던 부친이 작고한 후에는 파리로 가서 문학 공부를 했고, 이러한 인본주의 소양이 그의 신학과 종교 지도자로서의 경력에 큰 영향을 끼쳤다. 칼빈은 논리적이고 명석한 사고력을 지닌 문장가로서 수많은 글과 신학서를 후세에 남겼다.

칼빈은 일찍부터 교회의 개혁을 부르짖는 개신교주의자로 알려져서 관헌에 쫓겨다니는 처지였지만 글로 개신교 사상을 요약한 책을 써서 유명해졌다. 칼빈은 1541년 9월에 가톨릭교회로 복귀하기를 거부하고 제네바로 가서 제네바의 교회를 자신의 개혁 사상의 시험대로, 본거로 세우고 운영하여 기념할 만한 생애의 업적을 쌓는다.

헨리의 아들 에드워드가 영국 교회의 개혁을 채 본격화하기 전에 죽고 그의 이복 누이 마리아가 여왕이 되어서 영국 교회가 다시 로마로 돌아갔을 때, 많은 영국의 개혁주의자들이 찾은 곳이 칼빈의 제네바였고, 칼빈은 거기서 영국 개신교도들과 함께 스콧트랜드의 정경이 된 소위 ‘제네바 성서’를 번역했다. 엘리자베스가 본격적으로 영국 교회의 새틀을 짜고, 극단적인 구교파와 극단적인 개신교파를 제외시켰을 때 떨어져 나간 소위 ‘청교도’들은 제네바의 칼빈 교회를 가장 올바른 교회로 믿고 칼빈의 개신교 사상을 추종하던 사람들이었다. 칼빈과 칼빈주의와 제네바 교회는 영국 교회사에서 대단히 중요한 의미가 있다. 영국의 개혁 교회들과 장로교도 칼빈의 사상과 교회론에 뿌리박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1559년에 79개 장으로 된 방대한 책으로 집대성된 칼빈의 [그리스도교 강요]에 담겨져 있다.

칼빈주의의 핵심은 성경 제일주의가 그 하나이다. 그 다음 성경의 중심 사상은 삼위 일체 하느님이고, 우주의 모든 시-공 만물이 오직 하느님의 결정과 섭리로 존재한다는 것이다. 인간은 태초부터 죄와 구원, 소외와 화해의 대립 속에서 살아 왔다. 완전히 타락한 인간은 누구도 자기 힘으로 하느님께 돌아갈 수 없고 오직 은총과 성령의 도움으로 하느님과 화해하고 선민이 되어 끝까지 참고 견디어 갈 뿐이다.

인간은 하느님의 은총에 대한 응분의 보답으로 사회에 봉사해야 한다. 그래서 칼빈의 사상은 자연과학, 자본주의, 문학과 예술 면에서도 큰 공헌을 했다. 인간은 하느님이 주신 재물과 청지기 재간을 가지고 열심히 일해서 재물을 늘리고, 그 재물을 사회에 환원한다면 세상 누구에게도, 그리고 하느님께도 결코 죄 될 것이 없다는 인식을 심어 주었다. 자본주의의 발달과 그리스도교의 관계를 이야기할 때 주로 화제에 오르는 것은 칼빈의 사상이다. 하느님의 영광을 위해서 자연을 다스리고 개발하는 것도 나무랄 일이 아니라고 했다.

로마에 대항하는 데에는 루터보다 칼빈 쪽이 더 논리적이고 체계적이었지만 그에게는 루터의 인간미가 없었다. 거기에다 칼빈의 도덕주의와 금욕주의는 혹독하기까지 했고, 자신의 신학에 대한 자부가 지나치게 강했으며, 보복심이 두드러졌다. 적들을 고문하고 처형하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칼빈의 공과를 차분히 저울질해 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