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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9. 축성과 축복 – 성직자와 성당과 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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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9. 축성과 축복 – 성직자와 성당과 제대

본 내용은 대한성공회출판부에서 1998년 5월 발행한 책 <우리 믿음 바로 알기(김진만 저)>입니다. 게시를 허락해준 대한성공회출판부에 감사드립니다.

전통 교회에서 축성(祝聖)이라는 말을 자주 쓴다. 기도로써 어떤 사람이나 물건을 거룩하게 만들고, 보통 사람이나 물건과는 다른 것으로 만든다는 것이다. ‘성별’(聖別)이라는 말이 그 뜻이다. 보통 사람들, 보통 물건들 가운데서 뽑아서 거룩한 존재로 따로 떼어 놓는다는 것이다. 거룩하다는 것은 원래 ‘다르다’는 뜻이다.

우리 예식서에는 부제, 사제, 주교의 구별없이 모두 성직을 준다는 뜻으로 ‘서품’ 한다고 되어 있었지만, 가령 카나다 성공회의 예식에서는 부제, 사제, 주교의 서품식 속에 ‘축성’하는 순서가 들어 있다. 이 절차를 통해서 성직에 처음 오르는 부제의 경우, 평신도의 신분에서 성직자의 신분으로 옮아 가고 교회의 신도들 가운데서 떼어져서 하느님의 사업을 펼치는 그리스도의 일꾼이 된다. 성직자를 축성하는 것은 오랜 전통이고, 제단이나 성찬식에 쓰는 제대나 성작도 축성해서 쓰는 것이 관례이다.

새로 여는 성당의 경우에는 어떤가? 축성이니 축복이니 하고 구분하지만 원칙적으로는 성당이고 제대고 하느님과 호수 성인께 바치는 봉헌 예식이다. 그러나 우리도 교회의 전통을 따라서 축성할 성당과 축복할 성당을 구분하고 있다. 옛날 서양에서는 성당을 지으면 으레 성인들의 유적물을 성당 안에 안치했다. 그리고 그 유적물을 안치한 성당을 축성한 것이다. 성당을 짓고 유적물을 안치하려면, (오늘날 생각하면 극히 어려운 조건이지만) 교회의 땅에다가 교회의 돈으로 지은 성당이어야 하고, 한 번 축성되면 딴 곳으로 옮기지 못한다. 빚이나 다른 흠이 없어서 온전히 하느님께 바칠 수 있는 성당이라야 한다. 또 성당에 고정해서 안치된 제대가 있어야 했다. 그리고 성당이나 대성당이 준공되었다고 해서 즉시 축성하는 법도 없었다. 준공한 후 긴 세월이 지나서 정식으로 축성한 대성당이 적지 않았다.

그렇지 않고 남의 땅, 남의 건물에다 성당을 차렸다면—전세 집에다 성당을 차렸다면, 언제 딴 곳으로 옮아 가야 할지 모르는 일이어서 항구적인 하느님의 성전으로서 봉헌할 수가 없다. 따라서 그러한 성당은 축성할 수 없고, 단지 임시 성당으로 쓸 수 있도록 주교가 축복하는 것이다. 그러나 제대만은 축성해서 성찬식에 쓴다. 제대를 세내거나 빌려서 쓰는 법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성당을 축복하고 제대를 축성하는 예식이 함께 거행된다.

한 번 축성해서 하느님께 바친 것은 없애거나 옮기지 못한다는 것도 반드시 지켜지지 않을 수 있다. 도시의 한복판에 세워서 축성한 성당이 세월이 가고, 세태가 달라져서 제대로 성당으로 쓰이지 않게 되거나, 더 값싸고 큰 대지를 구해서 재건축하는 것이 바람직한 경우가 생길 수 있다. 사는 사람들이 없는 공동화된 도시의 한복판에 서 있는 대성당이 있을 수 있다. 탈종교 시대에 도심의 대성당에 와서 예배를 보는 교인이 극소수이거나 거의 없는 경우도 생각할 수 있다. 전통적인 교회의 구조가 새 시대의 선교 상황에 전혀 맞지 않거나, 오히려 값비싼 걸림돌이 되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 이럴 때 슬기로운 청지기로서 교회는 어떻게 하는 것이 옳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