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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 퀘이커즈 – 친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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퀘이커즈 – 친구회

본 내용은 대한성공회출판부에서 1998년 5월 발행한 책 <우리 믿음 바로 알기(김진만 저)>입니다. 게시를 허락해준 대한성공회출판부에 감사드립니다.

퀘이커즈는 고 함석헌 옹과의 연상으로 한국에서도 꽤 많이 알려진 그리스도교도들의 모임이다. 퀘이커즈는 ‘몸을 떠는 사람들’이라는 영어이다. 그 사람들은 하느님의 말씀을 들으면 몸을 떠는 것으로 소문 나 있었다. 그리스도교를 믿는 사람들의 모임이지만 교회는 아니다. 대표적인 무교회주의자들이다. 19세기에 이르러서 친구회(소사이어티 오브 프렌즈)라고 불리게 되었다. 다른 여러 특징 중에서 우애를 강조하는 퀘이커즈의 특징이 두드러진다.

친구회의 기원은 164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의 소위 청교도 중에서 가장 철저한 청교도들이었다. 창시자는 조지 폭스(1624-1691)였다. 폭스는 이렇다 할 학력은 없는 구두장이의 도제였다. 열 아홉살 때 친구들과 가족을 떠나서 많은 고통스러운 투쟁을 치른 후에 ‘살아 있는 그리스도의 내면의 빛’이라는 것에 몸을 던졌다. 그리고는 교회 출석을 거부하고, 당시의 종교 논쟁을 물리치고, 영혼에게 말씀하시는 하느님의 목소리 속에 진리가 있다고 설교하고 다녔다. 요즘 말로 하면, 과격한 성령주의자였다. 1649년에 교회 집회를 방해한 혐의로 잡혀 갇히게 되고, 다음 해에는 신성 모독죄로 투옥되기도 했다. 6년 동안을 감옥에서 살면서 감옥과 그 외 사회악에 대해서 항의하고, 만년에는 런던에서 이웃을 돕고, 학교를 세우고, 종교적 관용을 위해서 싸웠다. 한때 동지였던 청교도들과 국교도(영국 성공회)들은 퀘이커즈의 전투적인 선교 활동을 혐오하고 박해했다.

‘내면의 빛’을 최고로 여기는 친구 회원들은 성사를 배격하고, 일체의 예식과 성직을 거부한다. 그들은 예배와 조직 생활에 있어서 남녀의 동등을 믿고, 만인 사제직을 지지한다. 그들의 조직은 민주적이다. 퀘이커즈의 집회는 독특하다. 일정한 시간에 집회 장소에 모이면 제각기 자리에 앉아서 침묵을 지킨다. 그러다가 말을 할 충동을 느끼면 순서 없이 일어서서 이야기를 하고 다시 앉는다. 이러한 집회를 ‘미팅’이라고 부른다.

퀘이커즈는 모국인 영국에서 박해를 받다가 미국으로 건너가서 1689년에 윌리엄 펜(1644-1718)의 지도 아래 펜실바니아주를 설립했다. 펜실바니아주의 수도 필라델피아는 ‘우애’라는 뜻의 희랍어이다. 퀘이커즈의 장기는 장사와 박애주의였다.

오늘날의 상품의 정가제를 확립하는 데 그들의 공이 켰다. 18세기 초부터 그들은 노예제도를 반대했고, 그 폐지에 크게 공헌했다.

퀘이커 교인들이 전쟁을 반대하고 전투를 거부하는 것은 일체의 선서를 거부하는 것만큼 잘 알려진 일이다. 그것 때문에 박해도 받았지만, 집총 거부가 진정한 양심에서 나온 것이라는 것을 세계의 많은 나라가 인정하게 되었다. 집총을 거부하는 것이지 군 복무를 거부하는 것은 아니었다. 총을 들고 전투에 나가는 것은 양심상 거부했지만, 비전투적인 군무, 가령 군사 우편 업무에 종사해서 영웅적인 공을 세운 친구 회원들은 얼마든지 있었다.

원래 무교회주의로 시작했지만, 오늘날에는 목사의 인도 아래 예배를 보는 퀘이커교도의 모임이 많아졌다. 아무 믿음이나 감동없이 교회를 다니는 교인들보다 교회를 거부하는 퀘이커 교인들이 더 성스러워 보일 수 있다.